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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지역화폐

지역화폐

정부가 코로나 19로 힘든 사람을 위해 긴급재난지원금을 주기로 했다. 근데 현금도 아니고 쿠폰도 아닌 지역화폐로 준다고 한다. 지역화폐는 대체 뭐고 어떻게 쓰는걸까? 그리고 왜 정부는 긴급 지원금을 지역화폐로 주기로 한 걸까? 지역화폐는 말그대로 특정 지역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화폐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전 도민에게 10만원씩 주기로 한 '경기지역화폐(GMONEY)'는 경기도 내에서만 쓸 수 있다. 경기도를 예로 좀더 살펴보자. 경기도에는 31개 시와 군이 있는데 각자 자기 나름의 지역화폐를 다양한 형태로 발행하고 있다. 우선 결제 방식으로 구분된다. 일례로 시흥시는 지류형(종이상품권)과 QR코드 결제 방식인 모바일형 지역화폐 '시루'를 발행하고 있고 고양시는 선불형 충전식 체크카드 방식인 '고양페이'를 발행하고 있다. 성남시는 지류형, 카드형, 모바일형 3종류로 '성남사랑상품권'을 발행하고 있다. 발행방식으로 구분할 수도 있다. 정부 보조금을 지역화폐로 주는 '정책발행'과 소비자가 구입해 쓸 수 있는 '일반발행'이 있다.  일반발행된 지역화폐는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할인이나 캐시백 등 다양한 혜택을 주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서울의 지역화폐인 서울사랑상품권의 경우 3월 말부터 한시적으로 10만원 상품권을 15% 할인된 금액인 8만 5,000원에 팔고 있고 5% 캐시백까지 제공한다. 사용처만 제한되지 현금처럼 쓸 수 있는 지역화폐를 20%나 싸게 팔다 보니 벌써 수백억원어치가 불티나게 팔렸다고 한다. 이렇게 발행된 지역화폐는 해당 지역 내에서만 쓸 수 있는데 주로 전통시장이나 영세 상점 등을 사용처로 제한하고 있다. 백화점이나 쇼핑센터, 대형마트, 연매출 10억원 초과 사업체, 유흥업소, 주유소 등에서는 사용이 불가하다. 이건 국내 지자체들이 앞다퉈 지역화폐를 발행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 즉,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목적과 관계가 깊다. 대다수 지방정부들은 온라인 경제의 발전과 대기업 중심의 경제로 인한 소득의 '역외 유출(일정한 구역이나 범위의 밖으로 흘러 나감. 여기서는 지방 자본이 중앙으로 빨려가는 것을 의미)'로 고민이 많았다. 지역에서 일하고 지역이 제공하는 각종 복지혜택을 누리는 주민들이 정작 '소비'는 서울에 본사를 둔 대형마트나 백화점에서 하다보니 지역으로 흘러들어와야 할 세수가 부족해진 것이다. 만년 적자 상태를 탈피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바로 지역화폐이다. 정부가 주는 각종 지원금을 지역 내에서만 쓸 수 있는 지역화폐로 제공한다면 지역 경제가 활성화될 테고 지출한 복지예산보다 세수증가분이 더 커질 수도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지역 경제 활성화와 재정 적자 완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방 정부들의 실험은 2006년 무렵부터 본격화됬다. 경기 성남시는 정부지원금 등을 성남사람상품권으로 제공해 성남시 가맹점에서만 쓸 수 있게 했다. 2006년 20억원 규모로 시작된 사업이 2017년 260억원까지 늘어나며 성공리에 안착했다.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지역화폐를 발행한 강원 화천시는 산천어 축제 입장권을 사면 일부를 지역화폐로 돌려주는 프로그램을 도입해 관광수입까지 늘렸다는 호평을 받았다. 예산 4,400만원을 들여 화천사랑상품권을 발행했는데 이를 통한 부가가치가 16배 많은 7억원에 달했다는 것이다. 성공 사례들이 줄줄이 나오자지역화폐 도입에 앞장서는 지자체가 점점 늘어났다. 지난해까지 지역화폐를 발행한 전국 광역·기초단치단체는 177곳(243곳의 약 70%)에 이르고 2015년 892억원 규모였던 지역화폐 발행액은 2018년 3714억원 2019년 2조 3000억원으로 급격하게 늘고 있다고 한다. 올해는 3조원을 너끈히 넘어설 거라고 한다. 지역화폐의 장점이 또 하나 있다. 최근 등장한 지역화폐는 간편결제(제로페이)나 선불카드 방식을 채택하는 경우가 많다. 소상공인들이 내야 할 신용카드 결제 수수료등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소비자, 소상공인 모두가 행복한 지역화폐라는 것이다. 이토록 장점이 많다면 더 많이 발행하는게 좋은 걸까? 근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일단 지역화폐가 제공하는 각종 소비자 혜택이 결국 우리가 낸 세금에서 나간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얼핏 보면 소비자가 혜택을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결국 나랏돈으로 영세 자영업자 및 소상공인들의 가격 경쟁력을 키워주는 것이 아니냐는 불만이 나온다. 소상공인들의 역할이 우리 경제에서 주요하긴 하지만 이렇게 인위적으로 소상공인의 경쟁력을 키워주는 시도가 대체 어디까지 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일례로 서울사랑상품권은 지금 총 20%의 할인혜택을 제공하는데 화폐사용량이 늘어날수록 재정부담도 급격히 늘어난다. 지역화폐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불만이 쌓일지도 모른다. 사용처의 제한, 결제의 불편함 등으로 대부분 지역화폐가 일회성 사용에 그치고 있는 점도 문제다. 각종 할인 혜택을 제공해서 일반 소비자들이 지역화폐를 사용하게 하는 건 성공했는데 정작 지역화폐를 받은 상인들은 바로 이 지역화폐를 사용하지 않고 곧장 현금으로 바꿔버리는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지역화폐 발행 비용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계속 들어갈 수 있다. 가장 걱정스러운 지점은 흔히 '깡'이라고 말하는 불법 현금화다. 20%할인하는 지역화폐를 100만원치 사서 현금화할 수 있다면 아무런 수고없이 20만원을 버는 것이다. 각 지자체는 이런 현금깡을 막기 위해 구입 한도를 설정하는 등의 대책을 강구해 보지만 '우리는 늘 그랬듯이' 해답을 찾을지도 모른다. 이런 불법 현금화를 막지 못한다면 정부 재정은 재정대로 지출되고 돈은 시장에 돌지 않는 악순환에 빠지고 말 것이다. 끝으로 국내 지역화폐 사업이 정부 주도형이라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복지수당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정책이 사라져도 각 지자체가 재정을 털어 제공하는 할인·캐시백 혜택이 없어져도 사람들이 원, 달러 대신 지역화폐를 계속 쓸까? 지금만들어지는 지역화폐가 지역 경제를 살려 소상공인들을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소상공인들 역시 좀 더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사업 활성화에 힘을 보탤 필요가 있다. 지역화폐 이용자들에게 혜택을 더 준다거나 하는 자발적 노력을 통해 정부 주도의 각종 인센티브가 없어지더라도 매력적인 화폐로 남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지역화폐는 태생적으로 중앙 정부에서 발행하는 범용화폐, 국가 화폐와 비교해 여러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각국에서도 수많은 지역화폐가 생겨나고 또 소멸하고 있다. 하지만 영국의 브리스틀파운드나 일본 아톰통화처럼 오랫동안 사랑받는 지역화폐도 많다. 우리의 지역화폐들도 여러 단점들을 개선해 이렇게 오랫동안 사랑받는 화폐가 되면 좋겠다.